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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국악 자료라도 국내보다 외국에 있어야 더 대접하는 나라 풍토
글/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전국 방방곡곡 마을마다 존재했던 한국 고유의 다양한 마을축제는 군사정권 시절 미신타파라는 이유로 대부분 파괴되었고,
외국의 해골 축제는 이색 볼거리로 국내외 관광객이 몰려간다는 뉴스가 나오고,
외래 귀신 축제는 이제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축제가 되어가는 듯하며..
한국 최초의 상품용 녹음인 1906년 취입된 동일한 국악 음반이 근래에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발견되었는데
미국 학교에 있는 음반은 한국 거의 전언론이 대서특필하고 많은 관심을 모았으나
한국 소장가에게 있는 똑같은 음반은 거의 무관심 속에서 사장되고 있다.
1950년대 한국 공영방송국에서 대대적인 국악 녹음·음반 제작이 이루어졌고 해당 녹음이 관련기관들로 보급되었다.
60여년이 흐른 지금 국내 관련기관에선 해당 녹음이 상당수 없어져
1960년대 한국에 와서 해당 녹음을 복사해 간 미국 음악학자의 복사본 테입을 국립 국악기관이 다시 제공받았다고 한다.
국악 연구를 주도한 20세기 1세대, 2세대 국악학자 네 분이 평생 수집하고 연구했던 방대한 국악 자료 대부분이
최근 몇 년간 국공립 국악기관이 아닌 미국과 국내 각종 도서관에 흩어져 기증되었다.
(2018년 11월 20일 국악음반박물관 트위터 노재명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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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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