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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무 인간문화재 김덕명 명인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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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사찰 학춤>과 <한량무> 대가인 학산(鶴山) 김덕명 명인이 2015년 10월 24일 오전 1시 5분 부산 침례병원 응급실에서 노환으로 별세하셨습니다. 향년 92세.
발인은 2015년 10월 26일, 장지는 동면 내송리에 있는 선산에 마련됐습니다.
김덕명 명인은 어린 시절부터 <양산 사찰 학춤>을 비롯해 <바라춤>과 <지성승무>, <장검무> 등을 여러 스승으로부터 사사했습니다.
김덕명 명인은 1924년 동면 내송에서 아버지 김현민 씨와 어머니 이선혜 씨의 5남 2녀,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남사당패 등의 공연을 찾아다녔다고 합니다. 김덕명 명인이 어릴 때 부모님이 범어사, 통도사에 맡겨 사찰 무용을 익히게 됐습니다.
통도사 재산관리인으로 있던 조부 김두식 씨가 마을사람 안화주, 황종렬 씨에게 전수한 <양산 사찰 학춤>을 고인이 전수받았습니다.
김덕명 명인의 호인 학산(鶴山)은 <학춤> 공부를 많이 하여 마치 나무 위에서 학이 날 듯 <학춤>을 잘 췄기에 절에서 나올 때 통도사 보화 스님이 지어준 것입니다.
이후 고인은 양산 권번에서 명기 김농주 씨를 만나 전통무를 익혔습니다.
김덕명 명인은 평생 전통춤과 민속예술 전승ㆍ보급에 힘썼고 국내ㆍ외에서 다양한 공연 활동을 하였습니다.
김덕명 명인은 1979년에 <한량무>로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로 인정받았고 1988년 서울 올림픽 행사에서 <양산 사찰 학춤>을 공연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연등 바라춤>, <호걸 양반춤> 등 양산의 여러 전통예술을 알리는 데도 노력하였습니다.
고인은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으며 차남 김성수 씨(백성 스님)는 29세에 출가해 불교 학춤을 발굴하는 등 고인의 유지를 잇고 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국악음반박물관)

201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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