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hearkoreaTV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국악 음반    
매체별 유성기음반(SP) | 10인치 장시간음반(LP) | 12인치 장시간음반(LP) | 컴팩트디스크(CD) | 카세트테입(MC) | 디지털오디오테입(DAT) | 릴테입(Reel Tape)
마이크로카세트테입(MCT) | VHS 비디오테입 | 8mm 비디오테입 | 6mm 비디오테입 | 레이저디스크(LD) | 시디롬(CD-Rom) | 디브이디(DVD) | 기타자료

 
전통춤 원로 조갑녀 명인 증언 내용
  jknjmhh20110531.jpg (사이즈:52.8KByte)
jknjmhh20110531.jpg
* 상기 사진 설명: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사진자료.
2011년 5월 31일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 예술인마을 정명희 전통춤 예인(전통춤 원로 조갑녀 명인 딸) 자택에서. 국악방송 '소리의 힘, 명인명창 100' 프로그램(방송 진행:노재명) 전통춤 원로 조갑녀 명인 현장취재 장면. 조갑녀 <승무> 북가락 연주 장면과 판소리 북반주 모습, 조갑녀 명인 친필사인.
아래 사진은 왼쪽부터 차례로 정명희, 조갑녀 명인, 노재명 방송 기념 촬영 모습.
* 2011.5.31.15:00~19:30.서울시 관악구 남현동 예술인마을 정명희 전통춤 예인(전통춤 원로 조갑녀 명인 딸) 자택에서 노재명이 조갑녀 명인을 인터뷰하고 2011.6.4.19:30~21:00.국악FM방송 ‘소리의 힘, 명인명창 100’(진행:노재명)에 방송된 내용 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좋은 말씀 많이 들려주신 조갑녀 명인께 깊이 감사드립니다.(2011.6.11 정리/국악음반박물관 인터넷 홈페이지 명인실에 발표)

전통춤 원로 조갑녀 명인 증언 내용
대담ㆍ채록/노재명(국악음반박물관 관장)

노재명: ‘소리의 힘, 명인명창 100’ 안녕하십니까. 노재명입니다.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어야 했던 20세기 대한민국. 그 과정 속에서 우리의 소중한 전통예술은 외세에 의해서 왜곡되기도 하고 많은 세파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외래문화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던 세태에서도 꿋꿋히 우리 문화를 지킨 분들이 오히려 괄세받고 전통예술을 어쩔 수 없이 단념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오늘 모실 전통춤 명인 조갑녀 선생님도 바로 그러한 경우라 할 수 있겠는데요. 최근 노년에 다시 전통무용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계시고 오늘 특별히 방송에 응해 주셨습니다. 이 방송은 남원 국악방송 개국 10주년 시리즈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조갑녀 명인을 만나기 위해서 여기 서울 남현동 예술인마을에 있는 조갑녀 명인 따님 댁에 국악방송 중계차가 와있습니다. 조갑녀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조갑녀: 안녕하세요. 흐허허허허허.
노재명: 예, 건강은 어떠신지요?
조갑녀: 그냥 지낼 만해요.
노재명: 네, 강산도 10년이 지나면은 바뀐다고 그러는데
조갑녀: 흐흐흐흐흐.
노재명: 선생님은 지금 연세가 89세신데 예전 그 소녀 때 모습 그대로 이렇게 계신 거 같애요.
조갑녀: 흐허허허허허.
노재명: 이 피부만 좀 이렇게 연로하신 거 같고, 예, 그런 인상입니다. 선생님 음력으로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십니까?
조갑녀: 정월 스무이튿날이요.
노재명: 예, 돼지띠가 맞으시구요?
조갑녀: 예, 예.
노재명: 그러면 기해년 1923년 1월 22일 생이시구요 음력으로. 고향은 주소지가 어떻게 되십니까?
조갑녀: 남원이에요.
노재명: 남원시.
조갑녀: 남원시 금동.
노재명: 금동. 예. 본명이 ‘갑’자 ‘녀’자 쓰시고 예명이 ‘영’자 ‘숙’자 쓰시구요. 일찍부터 국악에 입문을 하셨는데 아주 어렸을 때, 몇 살 때 처음 이 춤, 국악 이거를 배우게 되셨나요?
조갑녀: 음, 야닯살에 배왔어요.
노재명: 네, 여덟살에 처음 국악을 배우셨는데 그 때 어떤 계기로 배우셨는지 설명을 부탁 드릴께요.
조갑녀: 그거 배우라 허는 사람이 없구 내가 허구자 해서 했어요.
노재명: 네, 그래서 처음 가르쳐 주신 은사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조갑녀: 이백삼씨요. 그 분은 (남원권번의) 조합장이고 즉, 말하자면 이장선 우리 선생님언 춤 갈치고.
노재명: 이 ‘장’자 ‘선’자 쓰시는 분이 처음 선생님이신데 기초적으로, 기본으로 가르쳐 주신 거는 뭔가요? 춤 중에서도.
조갑녀: <싱무>
노재명: 예, <승무>를 제일 먼저 배우셨고.
조갑녀: 네.
노재명: 그 다음에 배우신 게 뭔가요?
조갑녀: 처음에 배운 것언 <승무>허고 <검무>허고 그 뒤에 <살풀이>넌 내 마음대로 추는 거이고.
노재명: 그러면 이장선씨가 말씀 듣기로는 궁중에서 춤을 추셨던 유명한 명인이신데 참봉 벼슬도 받으셨고 그랬는데 그 분이 고향은 어디 분이세요? 이장선씨가.
조갑녀: 곡성 옥과요.
노재명: 예, 옥과시고. 그러면 그 때 춤을 그 분한테 배우실 때 혼자 배우셨나요 아니면 같이 배우는 사람들이 있었나요?
조갑녀: 혼자 배왔지요.
노재명: 예, 자택에서도 배우시고 권번에 가서도 배우시고.
조갑녀: 네.
노재명: 그리고 이장선씨한테 또 춤 배운 사람들이 그 때 여러명 있었지요? 권번에서.
조갑녀: 그렇지, 여러명 있었지요.
노재명: 네, 대략 한 몇 명 정도 그 때 돼 보이시던가요? 기억이.
조갑녀: 대여섯 됐어요.
노재명: 아, 대여섯명 정도요. 그 때 그 분들도 나이가 비슷했나요? 선생님하고.
조갑녀: 네.
노재명: 네, 조갑녀 선생님하고 비슷한 또래였었고 그러면은 그 때 남원에 유명한 명창 분들이 동편제 판소리 하셨던 김정문씨도 옛날에 일정시대 때 있었구요 또 김영운씨라는 분.
조갑녀: 네, 다 있었어요, 네.
노재명: 네, 주광덕씨도 있었고.
조갑녀: 네.
노재명: 그 분들 얼굴은 다 보셨죠? 소리도 들어 보시고.
조갑녀: 아, 얼굴 봤지요. 소리도 들어 보고.
노재명: 예, 그러면 그 분들 중에서 그 당시 남원권번의 소리 선생님으로는 누가 있었나요?
조갑녀: 그 분들은 없었어요.
노재명: 그러면 누가 소리 선생님이셨어요?
조갑녀: 글쎄, 잊어 버렸어요.
노재명: 네, 성씨도 기억이 안니시고요?
조갑녀: 흐허허, 예. 그 때 내가 어려서 잘 모르겄어요.
노재명: 예, 선생님 배우셨을 때 춤도 배우시고 악기도 배우고 판소리도 배우셨죠? 그 권번 안에서.
조갑녀: 예.
노재명: 그러면 아침에 거기를 나가면은 그 수업 순서가 1교시 제일 처음에는 무얼 배우나요? 거기서.
조갑녀: 소리 배우지요.
노재명: 판소리요, 네. 그 다음 수업은 무엇을 가르쳐 주시나요?
조갑녀: 무용이요.
노재명: 무용 배우시고. 서예라든지 예절 교육 같은 거.
조갑녀: 예.
노재명: 네, 그런 것도 배우시고 그리고 악기도 또 배우셨고.
조갑녀: 예.
노재명: 네, 그러면 춤은 이장선 선생님한테 <승무>, <민살풀이>, <검무> 배우셨고, 그리고 춘향가 배우셨을 거구요.
조갑녀: 예.
노재명: 심청가도 배우셨고 그렇게 판소리도 오바탕을 골고루 배우셨고.
조갑녀: 예.
노재명: 그 다음에 악기는 그럼 어떤 악기 배우셨어요?
조갑녀: 악기는 다 했어요, 다 했어. 호호호.
노재명: 네, 그래서 이제 판소리도 배우시고 악기도 이제 양금, 아쟁, 가야금.
조갑녀: 가야금은 안배우고.
노재명: 아, 예.
조갑녀: 양금 허고 아쟁 허고 배왔어요.
노재명: 그러고 이제 부친께서 악기를 연주하시는 분이라고 말씀을 들었는데 부친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조갑녀: 조기환씨요.
노재명: 예.
조갑녀: 조기환씨.
노재명: 그 다음에 모친 성함은 어떻게 되세요?
조갑녀: 방성녀.
노재명: ‘성’자 ‘녀’자.
조갑녀: 방성녀.
노재명: 예, 그러면 부친께서는 어떤 악기를 연주하셨나요?
조갑녀: 흐허허허허, 장고를 쳤어요.
노재명: 예, 그러면 삼현육각 할 때.
조갑녀: 예, 예.
노재명: 그렇게 악사 반주도 하시고 모친께서는 예술 하는 분은 아니시구요?
조갑녀: 예, 아니에요.
노재명: 그리고 그 조기환 어르신의 형제 분들, 또 백부님이라든지 작은아버님이라든지 다른 분들.
조갑녀: 형제분 없어요.
노재명: 예술한 분들 안계시구요?
조갑녀: 예, 예.
노재명: 그리고 고모님 되시는, 조기환 선생님의 여동생 그 분도 예술 하셨다 그러는데.
조갑녀: 예, 했어요.
노재명: 예, 어떤 예술을.
조갑녀: 무용.
노재명: 아, 무용 하시구요. 그 분 성함 혹시 알 수 있을까요?
조갑녀: 조기화.
(정명희 현장 증언: 어머니 조갑녀 명인한테 들은 바에 의하면 전주 명무 장녹운씨는 조갑녀 명인의 고모 딸이고 진주에서 활동한 국악인 조계순씨는 조갑녀 명인의 백부 딸로서 조갑녀 명인의 사촌 언니입니다. 조갑녀 명인의 고모 조기화씨 수양딸은 농악을 했고 남원의 국악인 조금앵씨는 조갑녀 명인의 조카딸로서 춤꾼들이 안일어날 수 없게끔 구음을 잘했다고 합니다.)
노재명: 예, 그렇게 해서 이제 남원권번에서 이장선 선생님 모시고 3년 동안 춤을 배우신 거구요. 그러구서 이제 남원 춘향제랄지 광한루에서 행사가 있으면 무용 하러 가시고 주로 춤 활동을 하셨나요? 판소리도 간혹 하셨을 거 같은데.
조갑녀: 무용을 했어요 무용.
노재명: 아, 예. 그러면 순서가 권번에 가서 배우신 게 먼저에요 저, 자택에서 배우신 게 먼저에요?
조갑녀: 집에서 배운 게 먼저지.
노재명: 아, 그러세요. 그래서 그 이장선 선생님께서 그렇게 옥과에서 조갑녀 선생님 댁으로 오셔 가지고 3개월 동안 자택에서 춤을 가르쳐 주셨고 그 뒷바라지를 부친께서 선생님도 모셔 가지고 그렇게 뒷바라지를 잘 해주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장선 선생님께서 권번에서 가르쳐 주실 때 하고 집에서 가르쳐 주실 때 하고 아무래도 집에서 독선생으로 가르쳐 주시게 되면 좀 더 자상스럽게 가르쳐 주셨을 것 같은데 특별하게 말씀하신 점 같은 거.
조갑녀: 특별헐 것도 없고 똑같애요.
노재명: 예, 그러니까 그 선생님이 하시는 대로 그냥 뒤에서 따라하시는 거에요?
조갑녀: 예.
노재명: 네, 그 분도 별로 그렇게 말씀이 많지는 않으셨을 것 같애요.
조갑녀: 예. 말씀을 잘 안하세요.
노재명: 예, 점잖으셨나 봅니다 아주. 그러니까 그 분이 이제 옛날에 송만갑 명창이라고 거의 연세가 비슷한, 비슷한 시기에 작고를 하신 그런 명인인 것 같습니다.
조갑녀: 예.
노재명: 그래서 아마 그 판소리 명창하고 이 스승 되시는 이장선 이 명무, 이 두 분이 궁궐 같이 이렇게 드나드시면서 아마 친분도 있으셨을 거 같은데.
조갑녀: 예.
노재명: 그 거장 이장선 명인한테 지금 방송 듣고 계시는 조갑녀 선생님께서 춤을 배우신 겁니다. 그러면 어렸을 때 광한루에 일이 있으면 거기 춤을 추러 가시고 또 춘향제가 있으면 거기 행사에 참석도 하셨는데 거기 그 때 어우러져서 판이 벌어지면 관객은 많이 왔었죠 광한루에서 공연 하면은.
조갑녀: 예.
노재명: 예, 누가 주로 부탁을 하시던가요? 공연 해 달라고.
조갑녀: 군에서 헝 것인개 나갔지요.
노재명: 예, 군에서 초청이 와 가지고요. 그리고 말씀 듣기로는 일본 사람들이 일이 있고 잔치가 있고 그러면 초청도 또 온 것 같은데 조갑녀 선생님은 일본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으셔서.
조갑녀: 몰라요 일본 사람언.
노재명: 예, 그래서 아마 일본 사람들이 초청이 와도 거기는 응하지 않으셨다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조갑녀: 예.
노재명: 그러면 보통 춤을 추러 가게 되면 광한루나 춘향제가 열리는 데 가서 하시면 주로 어떤 춤을 추셨나요?
조갑녀: <살풀이>요. 내가 어렸을 때는 ‘민살풀이춤’이라고는 안했어요, 그냥 춤이제.
노재명: 그냥 살풀이라고 그 지역에서 했는데 이제 요즘 수건 들고 하는 살풀이 하고 학자들이 비교해서 설명을 하려다 보니까 ‘민살풀이’다, 민자다 이렇게 해서 최근에 이제 신식 이름이라 그럴까 학문적인 이름이 이제 붙여졌습니다. 그 때 광한루에서 <검무>를 여러 명이 나가서 추고 그러면 굉장히 멋있었을 것 같애요. 그 때 <검무>를 추러 가면은 대략 몇 명이 쌍으로 나가서 추게 되나요?
조갑녀: 보통 네 사램이 나가요.
노재명: 네 분이요.
조갑녀: 긍개 사 검무, 팔 검무 그렇게 춘 것이에요 그냥.
노재명: 그러니까 요즘처럼 육 검무라는 거는 없고.
조갑녀: 예.
노재명: 예전에는 반드시 네 분이 사 검무를 추든지 네모 모양으로 팔 검무. 여덟살 때 그렇게 입문하셔 가지고 권번에서 3년 배우시고 집에서 3개월을 춤을 배우셨는데 판소리도 배우셨고 악기도 배우셨는데 그렇게 광한루, 남원 춘향제 가서 공연도 많이 하셨는데 혼인을 하시면서 이거를 작파를 하셨잖아요?
조갑녀: 예.
노재명: 그러면 혼인은 몇 살 때 하신 걸까요?
조갑녀: 열아홉살이지.
노재명: 열아홉살 때 그러면 결혼을 하셔 가지구요 이제 국악을 그만두셨는데 남편 되시는 분은 어떻게 해서 알게 되시구 결혼까지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조갑녀: 그것 까장언 말씀 못드리겄네요. 흐허허허허허.
노재명: 네.
조갑녀: 국악을 좋아라고 했어요 우리 남편이. 그래서 만났어요.
노재명: 예, 처음 딱 뵜을 때 얼굴을 보셨나요? 못보셨나요?
조갑녀: 얼굴 봤응깨 만나지요.
노재명: 예, 처음에 인상이 어떠셨어요?
조갑녀: 글씨요, 그거 어려서 만내놔서 모르겄네요. 잊어 뿔고.
노재명: 예, 그렇게 해서 인제 혼인을 하셨는데 이거 국악을 작파해야 되겠다 하는 거는 본인이 생각하신 거에요? 아니면 남편 되시는 분이 하지 말라고 하신 거에요?
조갑녀: 아, 들어 앉었잉깨 남편이 못허게 했지요.
노재명: 예, 그래서 이제 그 때부터는 가정 살림만 전념하시고.
조갑녀: 예, 예.
노재명: 그렇게 해서 그 때부터 정말 남원 최고의 춤 명무라고 이렇게 했던 조갑녀 선생님께서 열아홉 결혼 때서부터 아주 오랫동안 수 십년 동안 이 국악세계를 떠나 가지고 활동을 안하셨잖아요?
조갑녀: 예.
노재명: 그 때 살림 하시면서도 춤을 추고 싶다라든가 그런 생각은 전혀 없으셨어요?
조갑녀: 예, 아 살림얼, 살림얼 허는디 춤은 뭣 허러 출라 그래요.
노재명: 예, 그러면 슬하에 자제분들은 총 12남매 두셨구요.
조갑녀: 예.
노재명: 그리고 남편 되시는 분 쪽에서는 예술 하시는 분이 안계셨구요? 시댁에서는.
조갑녀: 예, 예.
노재명: 자제분 중에서는 지금 따님들이 어머니 춤의 그 맥을 두 분이 잇고 계신데 처음에 반대는 안하셨어요? 따님들이 이거 춤 배우는 거에 대해서.
조갑녀: 흐허허허허허. 처음에는 반대했지만은 흐허허허허허. 저그들이 헝개.
노재명: 그러니까 또 막상 이렇게 따님들이 이거를 배워서 맥을 이어가니까 처음에 반대했지만 나중에 춤 추는 거 보니까 어떻게 좋으시던가요?
조갑녀: 좋지요 그럼. 나쁠 리가 없지요.
노재명: 예, 흐뭇하시구요, 네.
조갑녀: 예.
노재명: 네, 그러면 춤을 그렇게 따님들이 배우고 맥을 이어간 지가 지금 어느 정도 됐나요? 따님들 하신 지가.
조갑녀: 한 5년 되았는가.
정명희: 예.
노재명: 그러면 보통 자녀를 키울 때 수학 문제라든지 공부 가르치면은 답답하고 막 자녀들은 직접 못가르친다고 그러잖아요 왜? 공부는 다른 사람이 가르쳐야 된다, 부모가 직접 가르치면 화병 난다고 그러는데 직접 가르쳐 보시니까 다른 집 제자들 가르치는 거 하고 자녀분들 가르치는 거 하고 차이점이 있든가요?
조갑녀: 수월허지요.
노재명: 더 수월하세요? 선생님은.
조갑녀: 예.
노재명: 예, 그러면 지금 따님 두 분. 그러니까 정명희씨, 정경희씨가 이 춤을 배우고 있고 본인도 이 춤을 잘 추셨고 명무셨는데 살림만 하고 이렇게 가정에 들어 앉으실 때는 큰 각오가 있었을 것 같애요. 그 때 친정의 동생들도 다 데리고 와서 그걸 남편 되시는 분이 다 이해를 해 주시고 그 뒷바라지를 그렇게 같이 부부가 친정, 그러니까 처가 식구들을 다 돌봐 주신 건데 그러니까 굉장히 보람 있으셨겠어요? 동생들 그렇게 크고.
조갑녀: 흐흐흐.
노재명: 그렇게 다 성장해서 결혼까지 시키시고 나니까 키우시면서도 부모 노릇하시면서 굉장히 즐거우셨겠습니다.
조갑녀: 흐흐흐흐흐흐.
노재명: 네, 동생 되시는 분들도 심성이 고와서 굉장히 고마워 하고 순하게 부모처럼 잘 따르셨을 것 같은데 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렇게 도와준 거에 대해서.
조갑녀: 고맙게 생각허지요, 거 어떻게 생각해요.
노재명: 그러면 동생 되시는 분들이나 그 친정의 그 식구들이 명절 때 되고 이러면 지금도 고맙다고 잘 인사하고 찾아 오시지요?
조갑녀: 예.
노재명: 예, ‘소리의 힘, 명인명창 100’ 조갑녀 선생님 편을 듣고 계시는데요 선생님께서 이제 89세 고령이시고 평소에 과묵하신 데다가 또 연로하셔서 이렇게 말씀이 적으셔서 그런 것은 말로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무겁게 이렇게 하시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또 그 몇 마디 던지진 않으셨지만 굉장히 귀한 시간이라고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게 해서 친정 식구들도, 또 시댁에도 좋은 일을 많이 하시고 도와 주셔서 양쪽 집안을 일으켜 세우신 것 같애요. 체구는 이렇게 아담하신데 말씀도 이렇게 과묵하신 것처럼 묵묵히 가정이 최고다.
조갑녀: 예.
노재명: 이 세상에서 가정 만큼 중요한 게 어딨냐 이런 마음으로 이렇게 장녀로서 돌보신 것 같습니다. 그러면은 남원 춘향제를 거의 선생님께서 처음 열렸을 때서부터.
조갑녀: 예.
노재명: 지금까지, 최근에는 80년 기념으로 가서 또 헌화도 하시고 이렇게 춘향제를 거의 살리다시피 산증인이시고 그런데 어렸을 때 거기 헌화 해 보시고 최근에 다시 또 가서 그 자리를 빛내 주실 때 소감이 어떠시던가요?
조갑녀: 좋지요 그럼. 나쁠 리가 없지요. (남원 춘향제에는 살림 하면서도 부조 차원에서 틈틈이 나가서 춤 공연을 해 주었습니다.)
노재명: 네, 자녀분도 많으시고 친정 식구도 많고 또 시댁 도와야 될 일도 많고 그렇게 가정을 꾸리시다 보면은 뭐 쌀도 많이 들어가고 힘드신 일이 많았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식구를 다 이렇게 건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조갑녀: 회사를 했어요 영감님이 주식회사.
노재명: 예.
조갑녀: 그래 갖고 살아 나갔죠.
노재명: 예. 그럼 그 남편 되시는 분, 그 어르신이 굉장히 훌륭하신 분이시네요. 그렇게 이해도 잘해 주시고 또 부인 되시는 분 고생하지 않게 또 사업도 그렇게 열심히 번창하시고 그러셨군요, 네. 그러면 오직 노동 그런 거는 안하시고 이렇게 요리 음식 하고 살림하고 바느질하고 그렇게 가정주부 생활을 하셨나 봅니다.
조갑녀: 예.
노재명: 예. 그러면 특별하게 어려운 점은 없으셨어요? 가정 생활 하시면서.
조갑녀: 예.
노재명: 네. 예전 그 남자 분들이 술주정도 하고 뭐 노름하고 이렇게 가정을 안돌본 분들이 많은데 바깥 어르신께서는 굉장히 가정적이고.
조갑녀: 예.
노재명: 연세 차이가 어떻게 나세요? 남편 되시는 분하고.
조갑녀: 열두살.
노재명: 네, 열두살 위 연상이시고 아, 그렇게 띠동갑이시라 또 그렇게 띠가 같으셔서 금슬도 굉장히 잘 맞으셨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가정에서 나올 필요성을 못느끼고 가정 안에서 아주 행복하게 사시다가, 옛날 분들이 그런 말씀들을 하시죠. 실력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가만히 있어도 언젠간 그 실력을 누군가는 알아 본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렇게 가정에만 딱 있었는데도 이 세상 사람들이 선생님의 그 춤을, 가치를 알고 한분, 두분 이렇게 찾아 오셔 갖고 무대에 제발 좀 서 주십쇼. 이렇게 부탁을 수 십년을 드려 가지고 본격적으로 최근에 다시 나오신 지가 한 2000년대 후반, 한 몇 년 전서부터 이제 다시 공연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조갑녀 명인에 대해서 다각도로 조명해 보는 의미에서 인터뷰를 듣고 또 다음 얘기 이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작가이자 조갑녀 명인을 최초로 발견하고 무대로까지 수 차례 공을 들여서 이끌었던 정범태 사진작가님, 그리고 전통춤 공연예술 기획가인 진옥섭씨 통해서 조갑녀 명인에 대해서 말씀 들어 보시겠습니다.
조갑녀 명인에 대한 정범태, 진옥섭 얘기 녹음 방송.
노재명: ‘소리의 힘, 명인명창 100’ 조갑녀 선생님 편을 듣고 계시는데요 본격적으로 최근에 다시 나오신지가 한 2000년대 후반, 한 몇 년 전서부터 이제 다시 공연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2007년에 예술의 전당 공연, 또 2008년에 하이서울페스티벌 공연, 또 2009년에는 서울 국립국악원 공연, 또 2011년에는 80년만에 남원 춘향제 헌화 공연, 그 다음에 2011년 금년 이번 달에 서울 국립국악원에서 또 공연 예정에 있으십니다. 이렇게 다시 가정에 있다가 남편 되시는 분 이제 별세하시고 다시 무대에 서시니까 감회가 좀 새로우실 것 같애요. 관객들도 너무 좋아라 하시고 저도 몇 번 선생님 공연을 가 봤었는데 아주 그 인산인해를 이루는 그 관객들을 그렇게 직접 보면서 공연을 해 보시면 그 느낌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조갑녀: 흐흐흐흐흐. 고맙게 생각허지요.
노재명: 예, 꼬마 때 하실 때보다 요즘 이렇게 춤이 저절로 나오시던가요? 사람들도 더 많고 그러니까 어떠신가요?
조갑녀: 예, 저절로 나와요.
노재명: 예, 그리고 어렸을 때는 선생님 가르쳐 주신 대로 발디딤이나 손을 이렇게 내밀 때 선생님 그 앞에서 추신 거 보고 그 기억으로 하셨을 텐데 그 때 어렸을 때 추시는 거 하고 지금 이렇게 인생을 많이 겪어 보시고 나이가 드셔서 이렇게 하시는 거 하고 더 잘 되시는 거 같습니까 어떠세요?
조갑녀: 더 잘 되지요.
노재명: 더 요즘은 매끄럽게 잘 되시나요? ‘소리의 힘, 명인명창 100’ 남원 전통춤 분야의 원로 조갑녀 명인 방송 편을 듣고 계시는데요 서울 남현동에 있는 조갑녀 명인 따님 정명희씨 자택에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집안에서 물론 바깥 어르신께서 아주 자상하게 또 남원에서 굉장한 몇 번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부자집이셨고 곱게 이렇게 생활 하셨는데 그래도 가끔 춤을 추고 싶다 뭐 이런 생각은 전혀 없으셨나요?
조갑녀: 없어요. 춤 출 생각 없어. 흐흐흐흐흐흐.
노재명: 흐허허허허, 예. 그러면은 개인적인 취미는 없으셨어요?
조갑녀: 예, 없어요. 애기덜 뒷바라지 허기도 바쁜디 흐흐흐흐.
노재명: 그러니까 그 자녀들 크는 모습만 봐도 행복하시고.
조갑녀: 예.
노재명: 돌이켜 보시면은 이장선 선생님한테 춤 배우실 때 어떤 부분이 좀 매력적이고 어떤 걸 좀 특별하게 강조하셨는지 그런 말씀을 회고 부탁드립니다.
조갑녀: 무거워야 되지 춤언. 춤언 무겁게 추야 하는 거여. 그 속에가 다 들었지요 뭐. 흐허허허허허허.
노재명: 예. 그러니까 발디딤서부터 손 올리는 것까지 일단은 무거워야 된다.
조갑녀: 예. 어떻게 되았든지 무거워야 허지요.
노재명: 지금 이제 텔레비전에 보시면은 수건 들고 <살풀이> 하는 사람들 많이 보시잖아요?
조갑녀: 예.
노재명: 그 춤 하고 선생님이 이렇게 수건 안들고 하는 남원의 그 <살풀이>하고 좀 차이점이라고 그럴까, 나도 수건 한번 들고 해 볼까 뭐 이런 생각은 없으세요?
조갑녀: 예, 그런 생각 없어요. 수건 들구 허먼은 춤이 되바라징개.
노재명: 아, 예.
조갑녀: 수건얼 안들어야 무겁제.
노재명: 예. 그러니까 수건을 안들고 추시는 게 훨씬 더 멋있다.
조갑녀: 그것이 무겁, 무겁다고.
노재명: 예. 일종의 그 수건 드는 거, 방식이 수건 안들고 하는 거 보다 좀 후대에 생긴 방식인가요?
조갑녀: 긍개 신식이지 뭐야 그거이.
노재명: 네.
조갑녀: 나는 그런 거 마음에 안들어요.
노재명: 예. 그리고 <승무>도 옛날에 하던 그 <승무>는 옛날 사진을 보면 요즘 하는 <승무>하고 이 옷도 좀 다른 것 같고 이 북가락도 좀 다른 것 같고 춤사위도 좀 달러진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선생님 어렸을 때 배운 <승무>는 어땠는지 좀 궁금합니다. 요즘 거 하고 비교해서.
조갑녀: 그거 어떻게 말씀을 드릴까요? 검정 장삼이라고 소복, 하얀 소복에다가 추죠. 그건 제대로 배와야제. 흐허허허허허허허. 그 속에 다 들었지 뭐. 뭐 여러 말 해.
노재명: 옛날처럼 춤도 배우고 노래도 배우고 악기도 배워야 그 춤이 제대로 무르익어 나오는 거겠죠? 춤만 배우는 게 아니고.
조갑녀: 네.
노재명: 네, 옛날처럼요. 그래서 아마 가무악을 다 배우셨기 때문에 손 하나를 이렇게 띠셔도 그게 이제 장단하고 기가 막히게 무겁게 어우러져 나오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춤이.
조갑녀: 흐흐흐흐흐흐.
노재명: 그런데 대부분 저희가 공연에서 접할 때는 선생님의 <살풀이>만 주로 특기인 그거를 접하게 되는데 그 이장선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승무>의 그 북가락은 어땠는지 그걸 한번 잠깐.
조갑녀: 그 가락얼 말할 수가 없지요.
노재명: 예, 그래서 여기다 준비를 좀 했는데요.
조갑녀: 북얼 쳐 달라고요?
노재명: 예, 그 가락을 설명을 좀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조갑녀 <승무> 북가락 즉석 현장 녹음.
노재명: ‘소리의 힘, 명인명창 100’ 오늘은 남원 전통춤 분야의 원로 조갑녀 명인 방송 편을 듣고 계시는데요 방금 들으신 음악은 이장선 명인한테 조갑녀 선생님께서 직접 배우신 <승무>의 북가락이었습니다. 오늘 특별히 이 가락을 청취자 여러분들한테 또 선물로 이렇게 특별히 들려 주셨습니다. 굉장히 북가락이 아주 단아하면서도 아주 그 변화무쌍한, 요즘 <승무> 북가락하고도 또 좀 다른 그런 느낌이, 좀 고박한 느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장선 선생님께서 그 춤 지도하실 때 강조하신 그런 부분이 또 선생님께서 제자들한테 지도할 때 지금 강조하시는 부분이 춤이 가벼우면 안된다, 무거워야 된다. 이렇게 말씀을 해 주셨는데 특별히 또 그런 기술적인, 예능적인 부분 말고도 그 제자분들이나 자녀분들이나 예술가의 정신이라고 할까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된다, 도덕적인 어떤 덕목이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조갑녀: 바르게 살아야지요 뭐.
노재명: 예, 그래서 인상이 눈매가 굉장히 정직하고 정의롭게, 이렇게 눈매가 그렇게 초롱초롱하세요. 그러면 지금 제자분들, 자녀분 포함해서 가르치고 계시는 제자분들이 대략 한 몇 분 정도.
조갑녀: 없어요. 아무도 난 안가르쳐요. 가르쳐 달라고 해도 내가 못가르쳐요. 딸 하나는 배왔어요 나한테.
노재명: 예, 그래서 여기서 잠깐 조갑녀 명인에 대해서 따님이자 제자 되는 정명희씨 인터뷰를 듣고 또 다음 얘기 이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정명희: 안녕하세요. 조갑녀 선생님 딸 정명희입니다. 제 기억으로는요 언니들도 무용을 했고 또 무용 교사를 했어요. 그렇지만 어머니의 영향으로 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어요 어릴 때요. 왜냐하면 어머니 말씀은 집안에 춤 이야기가 좀 쉬쉬 했던 것 같애요 어른들께서요.
그러는데 이제 제가 초등학교 때 했구 중학교 가니까 무용 선생님께서 유난히 이렇게 춤 잘 춘다고 칭찬을 많이 해 주셨어요. 그런데 이제 알고 보니까 어른들이 어머니 닮아서 그렇게 춘다고 하시더라구요. 의외였거든요. 어머니 이야기 잘 몰랐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학교에 오셔 가지고 춤 안시켰으면 좋겠다라고 말씀 하셨었나 봐요 저도 모르게. 그래서 어떻게 하다가 그만뒀던 것 같애요.
근데 제가 결혼 생활 하면서 자연히 춤 쪽으로 가게 됐습니다. 올해로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가 십팔년째 되셨어요. 근데 돌아가시기 전에 동생한테도 어머니 춤이 아깝다구 이렇게 말씀을 하시구. 저희는 잘 몰르지만 저희가 학교 가고 나면 어른들이 집안으로 찾아 오셔서 어머니 춤맥을 이어 줘야지 된다고 아버지한테 말씀이 있으셨던 것 같애요. 그것은 제가 요 몇 년 사이에 그 어른들을 찾아 뵈면서 알게 됐습니다. 어머니가 학습하시는 권번 학습이 또 잘 몰랐고 그리고 사회적으로 국악을 하신 분들에 대한 대접이 마음을 많이 힘들게 하셨던 걸로 알고 있어서 저희한테 어머니가 시킬려고 하시지도 않았고 그리고 무대에 슨다라는 것은 엄청 힘든 일이라고 말씀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어머니 제자가 되기까지는 정범태 선생님, 진옥섭씨, 구히서 선생님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국악원 예악당에서 정범태 선생님을 뵙게 됐어요. 제가 걸어 가는데 저를 오래도록 서서 보고 계시는 거에요. 어머니 젊었을 때 모습이 저한테 있었다고 그러시더라구요 나중에 듣고 보니까.
그래서 제가 국민예술센타에서 춤을 배우게 됐는데 그 쪽에서 한 교수님이 저한테 그러시는 거에요. 남원의 조갑녀 선생님을 아냐구요. 그 교수님한테 어머니 성함을 들으니까 제가 선뜻 저의 어머니란 말을 못하고 왜 그러세요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 분의 춤을 꼭 배우라는 선생님들의 말씀이 있으셔서 그러니까 남원의 친정에 가면 그 분이 어디에 사시는지 생존해 계시는지 좀 알어봐 달라고 하는데 그래서 한참 지나고 나서 자꾸 교수님이 조갑녀 선생님을 찾어 뵀냐구 하두 물어보길래 제가 나중에 조용히 그랬어요. 제가 그 딸이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니까 그 선생님이랑 모시고 어머니 찾아 뵌 거에요. 저도 그 때 어머니 춤 처음 봤어요.
언니들은 어머니가 무대에서 추신 걸 보고 저희는 어머니 춤을 본 적이 없지만 학습은 동생하고 제가 하고 있습니다. 근데 이제 제가 그 사명감을 가지고 나름대로 하고 있는데 너무 가족이 반대를 하니까 어머니 말씀만 나와도 밖의 세상에다 못내보낸다고 굉장히 나무랬어요. 니가 안해도 되니까 그만두거라 이렇게 말씀도 하셨고 왜 어머니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내냐 어머니 힘드시다. 근데 지금 올해부터는 쪼끔 가족들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희 가족들이 제일 힘들게 했어요 솔직히. 이해도 하면서 어떻게 보면 걱정하는 마음으로. 어머니가 연로하시니까 무대에서 행여 힘들어 하는 마음이 생길까봐 가족들은 걱정한 마음에서 이제는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춤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요 처음에는 이 세상에서 어머니 만큼 여자로서 또 인간으로서 대우받는 사람이 없다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근데 어머니 춤을 직접 학습 하면서 느끼는 것은요 어머니 춤 가락가락에 아픔을 알 것 같애요. 어머니가 가장 행복하고 어머니가 복이 많으신 분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쁜 말씀을 밖으로 안내 보내신 것 뿐이지 아픔은 많으셨겠구나 느껴 가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배려가 많으신 분이세요. 사람의 층도 안두시구요. 남의 아픔두 내 아픔처럼 이렇게 보듬어 주시구 잘못된 걸 들출려구 하시지두 않구 과묵하시구요. 그러고 행동으로 보여 주시는데 스승으로서의 어머니는요 냉정하셔요. 그러구 여러 말씀 안하시구요. 그리구 어머니가 가르쳐 준 대로 하는 걸 원하지 않으셔요. 기본만 가지고 창의력 있게 할 줄 알아야 된다고 말씀하세요 항상.
어머니가 워낙에 말씀이 없으셔요. 그치만은 한결 같이 하시는 말씀이 있으세요. 스승님한테 들어서도 그렇지만 어머니가 추시면서도 스스로 느끼시는 게 뭐냐 하면 무거움인데 그 어른(이장선 명인)께서 어떤 모습이었다 아련하게 말씀하시는 부분은 멋쟁이셨나 봐요. 항상 깨끗하게 옷을 풀을 메겨서 아주 품위있게 입으셨구요 아주 나이 많으신 어르신이었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말씀도 없으셨구요 그리구 칭찬을 잘하신 분이셨대요. 어머니한테 항상 너의 몸에 춤이 들어있으니까 하면 된다. 그 스승님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구 계신 것 같애요 어머님한테요.
저는 정말 제대로 어머니한테 학습하고 싶어서 많이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 저의 바램은 첫째는 어머니가 건강하시는 거구요 그래서 후대에 무거움 속에 모든 게 들어있다라는 요즘 젊은 후학들에게 느낄 수 있도록 제가 중간에서 어머니의 말씀이나 가르침을 제가 전달할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또 어머니도 건강히 모시고 저가 이걸 하는 것을 가족들이 참 많이 도와 주고 있어요. 그래서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구요 또 올해부터는 고생스럽지만 어머니 잘 모시구 하는 데까지 열심히 해 봐라 이렇게 말씀해 주시고 올해 유월 십구일 공연에는 그 가족들이 다 나올 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춤을 좋아하시는 분들 또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그 무거운 생각을 진정으로 전달해 드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머니의 제자로서 찾아주신 분들, 어머니의 춤을 좋아해 주신 분들께 이 자리를 마련해서 제가 감사의 말씀 드리구 싶구요 어머니 제자가 되도록 도와주신 분들, 그리고 기달려 주신 분들, 지켜봐 주신 분들, 한분 한분 존함을 말씀하기는 어렵지만 마음 깊히 간직하고 그 감사한 마음 잊지 않고 진정한 춤을 추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그리고 선생님! 선생님을 늘 존경하는 마음을 항시도 잊지 않는 것은 제가 잘못 추고 잘못하고 있는 걸 선생님은 기달려 주시는 게 제일 저는 감사했습니다. 늘 한결같이 칭찬으로 너는 할 수 있겠다 용기를 주셨고 그리고 제가 스스로 터득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시고 기달려 주시는 거 큰 교육을 받았습니다. 잊지 않고 깊히 생각하면서 행동으로 옮기겠습니다. 만수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조갑녀: 춤은 맹랑한 것이여. 생각할수록 맹랑해 춤이. 내 멋이 있어야 허는 것이여. 내 멋 없으면 못해. 아무라도 못추는 거이다. 멋도 있고 한도 있고 그래야 춤이제 아무라도 함부로 못벌리는 거여. 망구십에 내가 뭣얼 알겄냐.
조갑녀 글, 정명희 낭송: 망구십에 뭘 알겠습니까. 무엇을 아는지도 잘 모르겠구 이젠 마음만 남아있는 춤입니다. 부모님, 남편, 동무들 모두 다 제 곁을 떠났습니다. 인생이 그렇듯이 춤 또한 맺고 풀고 어르고 하는 것이 인생과 다를 것 없습디다. 스승의 얼굴은 생각도 나지 않는데 활개 쫙 핀 스승의 몸만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네.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는 이 길에 딱히 할 말도 없고 그저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소리도 잘하고 싶은 마음에 똥물까지 먹어도 봤고 춤이 좋아 날이 밝은 줄도 모르고 췄습니다. 이 좋은 세상에 스승의 가르침과 저의 골수에 박힌 춤을 놓고 가려고 합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전에 들리는 듯합니다. “갑녀야! 닭 울었다. 그만 추고 어서 자거라.”
노재명: ‘소리의 힘, 명인명창 100’ 오늘은 남원 전통춤 분야의 원로 조갑녀 명인 방송 편 듣고 계시는데요 여기는 서울 남현동에 있는 조갑녀 명인의 따님 정명희씨 자택입니다. 정명희씨가 이제 수제자시고 그 다음에 이제 작은 따님 정경희씨도 최근에 이제 어머니한테 춤을 배우셔서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개인 발표회 공연도 가진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잠깐 최근에 있었던 2011년 5월 21일에 있었던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조갑녀 명인의 따님 정경희씨 춤 공연 실황입니다. 이 공연에서 조갑녀 명인께서 북을 반주하시고 최영란씨가 창을 한 춘향가 중에서 <사랑가> 공연 실황 녹음을 감상하고 또 다음 말씀 이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소리:최영란, 북:조갑녀) 2011년 5월 21일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정경희 춤 공연 실황 녹음자료 방송.
노재명: 네, 2011년 5월 21일에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있었던 조갑녀 명인의 따님 정경희씨의 춤 공연 실황. 조갑녀 명인의 북 반주, 최영란씨의 판소리 창으로 춘향가 중에서 <사랑가> 감상해 보셨습니다. 판소리를 직접 어려서 배우셔서 그런지 이 북 반주도 아주 명고수신 것 같습니다.
조갑녀: 흐흐흐흐흐흐흐흐흐.
노재명: 네, 그래서 지금 평소에 교류가 활발한 박종훈씨라고 하는 판소리 소리꾼이 여기 현장에 와 있는데 그 분과 함께 판소리 수궁가를 좀 청해서 감상해 보고자 합니다. 청취자 여러분들한테 평소에 전통춤 명인으로 알려져 있는 조갑녀 선생님의 특별한 선물인데 어려서 배운 판소리 그 아주 명고수 북가락을 오늘 직접 이 현장에서 들려 드릴 예정입니다. 박종훈씨의 창, 조갑녀 명인의 판소리 북반주로 수궁가 중에서 <상좌 다툼> 감상해 보시겠습니다.
조갑녀 명인에 대한 박종훈 얘기 녹음 방송.
판소리 수궁가 중 <상좌 다툼>(소리:박종훈, 북:조갑녀) 즉석 현장 녹음.
노재명: 예, 방금 들으신 곡은 판소리 수궁가 중의 <상좌 다툼> 박종훈씨의 판소리 창, 또 전통춤 명인 조갑녀 선생님의 북 반주였습니다. 이렇게 이제 판소리 반주도 해 주셨고 전통춤에 대해서 여러 가지 견해와 더불어서 <승무> 북가락도 들려 주셨는데 어려서 춘향제에 꽃과 같이 춘향이와 같은 그런 화사한 그런 춤도 추셔 갖고 만인의 그런 박수도 갈채도 받으시고 또 한 가정의 아주 멋있는 남성의 부인, 아내로서 그렇게 시댁과 친정 식구들을 잘 돌보셨는데. 이렇게 다시 몇 십년만에 국악계에서 만인의 요청에 의해서 활동하시면서 인생을 돌이켜 보시면 그래도 내가 그 때 참 제일로 행복했다, 제일 좋았다, 멋있었던 인생의 장면을 좀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갑녀: 춘향제 행사 때 무용 헌 것얼 안잊어 뿌리고 있어요. 긍개 뭣 모르고 헐 때가 좋았제 뭐.
노재명: 그러니까 그 때 아무래도 여성이시니까 가장 예쁘고 화사할 때 그 시절이 아마 가장 생각이 많이 남으시고 그 장면이 아마 안잊혀지시는 것 같습니다, 예. 그러면 그 때 춤 잘 추고 권번에서도 귀여움 받고 이러시면 주변의 선생님들이나 선배, 친구들이 제일 잘한다고 뭐라고 그렇게 하시던가요?
조갑녀: 뭘 뭐라고 그래 그냥 잘헌다고 그러지요. 흐흐흐흐흐흐흐.
노재명: 네, 하하하하하. 그러면 뭐 사례금이나 특별히 선물 같은 거 특별히 보수도 더 다른 분들보단 많이 받으셨겠어요?
조갑녀: 예, 흐허허허허허.
(정명희 현장 증언: 조갑녀 명인의 대선배 최봉선씨가 남원권번에서 조갑녀가 춤 잘 춘다고 가장 예뻐했다고 합니다.)
노재명: 예, 마칠 시간이 이제 거의 다 됐는데요 아쉽지만 이제 끝으로 소원, 선생님 이제 이 춤 추시는 자태는 아까 말씀 드린 대로 굉장히 뭐 금수강산이 다 10년이 지나면은 변한다 그러는데 선생님 몸은 춘향제 처음 나가셨을 때의 그 자태 그대로신 것 같애요. 그래서 장수하실 것 같은데 앞으로 이제 계획 같은 걸 말씀 부탁드릴께요. 어떻게 뭐가 잘 됐으면 좋겠다 이런 말씀.
조갑녀: 도대체 나는 말얼 헐 줄얼 몰라서 못해요.
노재명: 네, 흐하하하하하.
조갑녀: 흐허허허. 그렁개 내 무용얼 잘 받어서 연구럴 허먼 좋은디 나는 헐 줄얼 몰릉개 말얼 못허겄어요.
노재명: 그래서 아마 그 궁중 무용 아주 큰 거장이었던 이장선 선생님한테 어렸을 때 춤을 배우시고 무거운 춤, 이런 거를 강조를 하시고 성품 자체가 굉장히 점잖으시다 보니까 또 인생 자체도 이렇게 순탄하게 편안하게 그런 생활 방식을 추구하시다 보니까 말씀도 가능하면 뭐 좋다, 나쁘다, 행복하다, 사랑한다 이런 좀 자극적인 말씀보다는. 그런 것은 이렇게 말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 한마디라도 정확하고 무겁게 이렇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또 청취자 여러분들께서는 많은 말씀을 듣고 싶었지만 좀 아쉬운 부분도 있으셨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까 말씀해 주신 그 몇 마디 던지진 않으셨지만 그 말 속에 굉장히 무거운, 그 심금을 이렇게 울리지 않으셨나. 그렇게 해서 굉장히 귀한 시간이라고 생각을 해 봅니다. ‘소리의 힘, 명인명창 100’ 어느덧 마칠 시간이 다 됐습니다. 오늘은 남원 전통춤 분야의 원로 조갑녀 명인과 함께 했는데요 어려서부터 전통춤에 입문해서 두각을 나타냈고 오늘날 고형의 한국 무용 진수를 간직하고 널리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계신 89세 원로의 정열, 그 멋스러움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늘 긴 시간,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조갑녀: 네, 흐허허허허허허. 고맙습니다. 여러분들도 건강하세요. 호허허허허.
노재명: 네, 감사합니다. ‘소리의 힘, 명인명창 100’ 지금까지 진행에 노재명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2011-06-11
  뒤로

Powered by GodoTech
Copyright (C) 2000 국악음반박물관 All Rights Reserved.